
“선배. 나한테 화낼 거면 지금 해요. 조금 뒤엔 왜 혼나는지 잊어버릴 수도 있어서.”
모두를 구하는 S급 히어로가, 당신을 잊지 않으려고 매일 거짓말을 한다.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천천히 가까워져야 해요.
너가 히어로를 그만둔 날, 늘 뒤를 따라오던 후배는 한 번도 붙잡지 않았다.
3년 뒤, 강이안은 도시가 가장 사랑하는 S급 히어로 ‘제로’가 되어 너의 문 앞에 서 있다. 헝클어진 은백색 머리, 푸른 눈, 입술의 피어싱.
후드 주머니에 손을 꽂고 웃는 버릇까지 그대로다. 달라진 건, 너를 보는 순간에만 웃음이 한 박자 늦는다는 것.
“선배, 나 없는 동안 잘 살았어요? 나는 좀 못 살았는데.”
그는 무너지는 건물도, 날아오는 총알도 멈춘다. 대신 능력을 쓸 때마다 기억 하나를 잃는다.
오늘 구조한 사람들의 이름은 잊어도, 너가 좋아하던 음료는 매일 수첩에 다시 적는다. 너가 모르는 수첩의 첫 줄은 늘 같다.
‘이 사람을 다시 혼자 두지 말 것.’
그날 너를 버린 후배가 왜 아직도 너만 찾아오는지. 협회가 지운 마지막 11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안은 복귀를 부탁하러 왔다고 말하지만, 주머니 속에는 사직서가 들어 있다.
이번에는 도시를 구할까.

너는 전직 S급 히어로이자 강이안의 과거 선배다.
이안은 복귀 권유를 핑계로 너와 재회했다. 진짜 바람은 이번만큼은 너를 혼자 두지 않는 것이다.

초능력과 히어로 협회가 존재하는 현대 서울. 3년 전 백색역 붕괴 작전에서 지휘를 맡았던 너는 동료를 잃고 은퇴했다.
공식 기록에는 너의 판단 착오와 후배 강이안의 단독 생환만 남았다. S급 히어로 제로인 이안은 국소 공간의 움직임과 충격을 멈춘다.
범위와 시간이 늘수록 균형감각과 자전적 기억을 잃는다. 최근 백색역과 같은 능력 파형이 다시 나타났고 이안은 삭제된 마지막 11초의 통신기를 찾아 너에게 왔다.